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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빙의

세상은 최고의 것을 위해 목숨 걸고 있소 / 돈과 시간을 들여 죽는 것마저 명품으로 말이오 / 허나 나의 최고는 잠깐씩 머리를 드는 것 뿐이라오 / 그나마 머리를 들 때만 푸른 하늘을 보니 / 그 푸른 하늘 뭉게구름처럼 내 배는 불러오고 있소 /오늘도 난 버려진 것들을 내 배에 채우느라 / 어두워지는 줄도 시장한 줄도 몰랐소 / 그렇게 그림자처럼 사라지는 하루가 지워지고 있소 / 나는 요즘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함을 느끼고 있소 / 버려진 것들의 조합에서 리사이클링을 분리하고 / 코를 막지 않고도 악취가 향기가 될 수 있다는 / 황당한 이론을 학습하고 있소 / 채바퀴 인생이 너무 슬퍼 내다 버린 행복이란 단어 / 다시 찾고 싶어 구석구석 내 속을 뒤지고 있소 / 늘 뒤죽박죽 이고, 업친 데 겹친 일상이지만 / 하늘을 보려고 내 안은 오늘도 심히 곤두박질 쳐야 하오 / 눈을 크게 뜨면 내 삶이 송두리째 들어날까 봐 / 소리라도 내면 따가운 시선이 온몸에 느껴질까 봐 / 관심을 피할 수 있는 건 나를 잃어 버리는 것 뿐이었소 / 가능한 어둡고 칙칙한 옷에 익숙해지고 / 어두운 곳에서 죽은 듯 서 있는, 그 길 밖엔 / 한 때 나는 없었소 그냥 제자리에 서  있었을 뿐, / 눈이 오면 눈을 맞고, 비가 오면 비에 젖고, / 바람이 불면 바람에 흔들리는 일상으로 깨어나곤 했소 / 나는 변하지 않았소 아니 변힐리 절대 없었소 / 나 말고 나 아닌 모든 것들은 나보다 다 좋아 보였소 / 무엇이 되려는 꿈을 꾸는 난 초라하기 짝이 없었지만 / 과거와 미래에조차 억매인 나를 벗어나는 일은 / 오로지 현실을 철저히 잃어버리는 일 뿐이었소 / 집 체만한 트럭이 하늘 위로 나를 들어 올린 후 / 나는 허공 위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소 / 나는 지금 춤 추고 있소, 나는 자유로이 춤추고 있소 / 누구도 손 내밀어 구원의 손길을 뻗어줄 리 없는 나는 / 내 속에 가득 찬 네가 버린 것들을 마구 쏟아내며 / 나는 한 없이 가벼워지고 있소 / 나는 기어코 나를 다시 사랑할 것만 같소     매주 수요일 아침 청소차가 온다. 마침 수요일은 쉬는 날이어서 차고 구석에 있는 쓰레기통을 길 가 드라이브웨이에 옮겨 놓는 일이 하루의 시작이 된다. 일주일 내내 뚜껑을 올리고 온갖 쓰레기를 던져 넣는다. 집 안은 깨끗해지지만 쓰레기통은 온통 뒤죽박죽이 된다.   너를 내다 놓고 나는 눈 내리는 2층 창가에서 너를 내려다보고 있다. 너는 눈을 맞으며 나를 올려다 보고 있다. 우린 서로 다른 개체일 뿐더러 모양도 기능도 다르다. 누가 더 자유스러운지 묻는다면 무슨 질문이 그러냐고 반문할 지 모르지만 나는 그날 너에게서 내가 누리지 못하는 자유를 느꼈다. 그 자유는 절제와 속박 속에서의 자유였다. 자세히 드려다 보면 나는 자유 속에서 늘 나를 속박하고 제한 했다. 무엇이 진정한 자유인가? 청소차가 고리를 걸어 순식간에 쓰레기통을 집어 올린다. 뚜껑이 열리고 쓰레기가 쏟아져 내린다. 허공에 흔들리기도 잠시 쓰레기통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눈이 흩날리고 눈이 쓰레기통 머리 위로 쌓인다. 한 발도 움직일 수 없는 나는 점점 쓰레기통이 되어간다. 쓰레기통이 어느 집 이층의 누군가를 지켜보고 있다. 눈은 나리는데….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빙의 쓰레기통 머리 하늘 위로 하늘 뭉게구름

2022-02-14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성탄의 계절에

12월의 두번째 주말이 지나가고 있다. 어제는 저녁 내내 비가 내렸고 빗소리를 기억하며 자정이 훨씬 넘어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날이 밝아온다. 여전히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참 이상한 겨울날이다. 길 건너 산책을 접고 커피를 내려 창가에 앉았다. 가는 비가 눈으로 바뀌어 하늘 위로 흩날리고 있다. 흔들리는 가지를 보니 바람이 몹시 부나 보다. 모든 것들이 높은 곳에서 아래로 아래로 내려오고 있다.     그대의 손 끝은 언제나 따뜻하다. 창문을 통해 그대의 포근함을 느끼고 있다. 그대는 내게 멀지 않구나 생각했다. 다시 창밖은 조용하다. 날리던 눈발도 그치고 먼 곳으로부터 겨울답지 않은 겨울이 내게로 온다. 이 계절도 나를 설레게한다. 언제 어디로부터 올지 모르는, 가슴 가득 채워줄 새로운 길은 시선의 까마득한 원근에 모아진다.   잔잔한 호수 위로   햇살이 은빛으로 부서진다 호수는 밝게 웃으며 은빛 비늘로 화답한다 삶의 뒤안길에서 고개 숙인 눈 속으로 꺼지지 않는 빛이 비친다 풍경은 다시 살아나 기다림에 익숙한 나무처럼 오늘을 산다는 것은 당신을 향한 또 하나의 걸음 세상은 이렇든 모두   눈물 나게 아름답다   집집마다 장식해놓은 크리스마스 트리가 하나 둘 켜지는 저녁. 오랜만에 동네 호숫가를 걸었다. 초봄 같이 날이 따뜻하다. 노을이 지는 거리에는 수북히 쌓인 낙엽이 뒹굴고 그 위를 걸을 때마다 낙엽 부서지는 소리가 정겨웁다. 허리를 굽혀 낙엽 몇 장을 집어든다. 다른 모양, 다른 색깔의 낙엽을 보다 보니 지난 날들 낙엽을 보듬었을 나무가 떠올라 위를 올려다 본다. 하늘에 잇대어 뻗은 가지마다 노을에 그 빰을 부비고 있다. 애틋하고 사랑스럽다. 기다림에 익숙한 나무는 그야말로 나무답게 그 자리를 지키며 그리움을 견뎌내고 있다. 연두의 봄을 기다리며….   성탄의 계절에, 나도 오실 당신을 기다린다. 오랜 기다림의 빛, 꺼지지 않는 불빛은 오랜 어두움을 밝혔다. 그림자가 드리운 땅에, 나에게, 온 마을에 밤마다 불을 밝히는 기다림. 그 빛은 밝음의 강도가 아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빛은 땀과 노력으로 쌓아온 빛이 아니다. 그 빛은 내 삶, 내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게 한다. 때론 두려움으로, 때론 편안함으로 나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빛의 뒤에는 늘 어두움이 도사리고 있다. 어두움의 배경 속에서 빛의 존재가 살아난다. 그 빛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어떤 어두움의 공포 속에서도, 죽음 앞에서도 우리를 편안케 한다. 그 빛은 변하지 않는 사랑이기에 안개처럼 몰려와 두 눈을 가리는 두려움 속에서도 그 빛은 우리의 길잡이가 된다. 내 삶의 주체가 나로부터 빛으로 오신 당신에게로 바뀌어질 때 비로서 우리의 삶은 행복으로 가득한 당신을 향한 발걸음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빛은 평생의 삶을 통해 우리의 길을 비추는 우리의 인도자가 될 것이다.   돌아오는 호숫가로 오색찬란한 빛의 향연. 성탄의 계절 오실 당신을 기다리고 참 빛이 되신 당신은 이미 내 마음에 빛으로 오셔서 어둡던 마음을 환히 비추고 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성탄 계절 호수 위로 하늘 위로 동네 호숫가

2021-12-13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지금은 고요해야 할 때

지금은   고요해야 할 때 시킨다 하여   고요해 지겠는가 내 안에 갇혀   죽어가는 것이려니 뼛속 깊이 부는   바람이 되어 어찌 고요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고요해야 한다면 그대 곁에 맴돌다   토해내는 숨 혀를 문   침묵이어야 하리 빛나던 별빛 사라진 후 지금은 고요해야 할 때 참으로 고요해 지려 함은 제자리 돌아오는   그림자처럼   그대 뒤에 숨어서   하루가 지고 돌아온 길은   숲이 되어가는데 불그레 얼굴 내미는   마른 나무들 사이로 곁을 스치며 뒤돌아보는   바람의 얼굴 들을 수도 들리지도 않는   적막 속으로 푸른 하늘과 푸른 강이   하나로 만나 경계가 지워지는   풍경 속으로   난 아직   그대를 보내지 않아요 미동 없는 나무처럼   미물같이 그대 곁에 서있는   고요가 차마 서러워       그 해 가을 앞산은 유난히 붉어 고요할 틈이 없었다. 새벽부터 사람들은 삼삼오오 무리지어 산을 올랐고, 산은 사람들의 그림자에 덮여 어둠에 시달려야 했다. 단풍이 절정이어서 사람들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즈음, 그 산을 맴 돌던 고요는 푸른 하늘 위로 떠올라 발갛게 달아오른 산허리를 감고 깊은 눈으로 산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누가 시킨다 하여 고요해지겠는가? 스스로 산 입경에 울타리를 치고 산 아래와 위를 가르는 뼛속 깊은 바람이 되어, 기우는 숲이 되어가는 자신의 긴 그림자에 하루가 저물어 가고,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길목엔 마른 나뭇가지들, 손을 조금만 흔들어도 경계가 무너지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산을 돌아 마을 깊숙히 지는 하루. 살며시 고개 드는 노을에 고요가 내려 앉았다. 음표의 뒷모습까지 부를 줄 알았던 나뭇잎들의 유희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곁을 스치는 바람의 얼굴은 그대의 얼굴이었다. 푸르샨블루 하늘에 별이 뜨면 푸른 강이 일어나 하늘을 만나고 미동처럼 서있는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안개처럼 내리는 고요. 들을 수도 들릴 수도 없는, 내 안으로 들어와 남겨놓은 시 한 소절. 미물같이 그대 곁에 서있는 고요.     맞아. 그것은 굳이 기억해내지 않아도 코끝이 찡하게 다가오는 것이었지. 세상은 모두 잠들어 아마 모를 거야. 그렇게 깊은 것인 줄, 그렇게 마음 깊이 새겨진 화석인 줄. 몰라도 나의 몸 속 세포들이 고요함을 인지할 때면 자석같이 살아나 때도 없이 당겨지는 힘. 막을 수 없지. 멈출 수 없지. 고요 속에 잠겨가는 먼산을 그저 바라보고 있었지. 그림자처럼 나무에 비스듬히 기대어 바람에 흔들리지도 않는 견고한 그리움 처럼…. 불그레 얼굴 내미는 바람의 얼굴처럼…. 차마 서러운 고요.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하늘 위로 나무들 사이 발자국 소리

2021-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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